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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마을에서 만난 창작자 이야기 - 일상을 만화로 기록하는 작가, 귀찮

잠시 일상을 떠나본 적 있으신가요? 독일마을은 일상과는 조금 다른 시간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언덕을 오를 때는 평소보다 조금 더 가쁜 숨을 내쉬어야 하고, 전망대에 닿으면 주황색 지붕과 푸른 바다가 만들어내는 이국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먼 곳으로 떠나야만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던 음식과 문화도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되죠무엇보다, 나와는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합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독일마을 창작자 체류 프로그램 데미안의 방은 창작자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풍경과 사람, 그리고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도록 마련된 프로그램입니다일상을 만화로 기록하는 귀찮작가는 그렇게 이곳을 찾았습니다일상의 경계를 넘어 찾아온 독일마을의 23, 그 시간은 어떤 이야기로 남았을까요?

 

 

Q. 일상을 기록하는 창작자, ‘귀찮을 소개해주세요.


주로 일상을 만화로 기록하고 있어요. 작품과 일기 사이 어딘가에 있는 이야기들이라고 할까요. SNS 채널을 통해 짧고 투박한 만화를 꾸준히 그려왔고, 어느덧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시골에서도 먹고 살 수 있다면 세상 어디에서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문경에 내려왔습니다. 오래된 시골집을 고쳐 살기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고요. 그러고 보니 어느덧 10년 차 시골 사람이 되었네요.



Q. 남해 독일마을 데미안의 방체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남해 자체가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섬이라는 특성 때문에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가 될 것 같았거든요. 사실 그 시기에는 창작자로서 조금 지쳐 있기도 했어요. 일상에 너무 깊이 잠겨 있다 보니 예전처럼 사소한 일들을 그리고 쓰는 일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잠시라도 일상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반드시 혼자서요. 혼자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리고 쓰게 되고, 아주 작은 일거수일투족도 창작의 원료가 되거든요혼자 기차를 타고, 낯선 도시에서 렌터카를 빌리고, 독일마을에 도착하기까지. 그 과정만으로도 이미 많은 감정과 이야기가 쌓이고 있었어요.





Q. 독일마을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잔잔한 바다를 닮은 사람들이 좋아서 20대부터 종종 남해를 찾았지만, 사실 독일마을은 늘 지나가며 보기만 했어요. 겉모습만 독일풍으로 꾸며 놓은 테마마을일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직접 와보니 제 예상과 완전 달랐어요. 우선 실제로 독일인과 파독 근로자분들이 생활하고 있는, 관광지이면서도 그 분들의 생활이 섞여 있는 매력적인 마을이었어요. 특히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인상 깊었습니다. 물건항의 푸른 바다와 붉은 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창작을 하면서 종종 느끼는 제약이 오히려 아름다움을 만든다는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같은 색의 지붕들이 모여 하나의 풍경을 만들고, 그 풍경이 바다와 어우러져 더 큰 아름다움이 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 정말 여행을 왔구나"를 실감한 순간은 마을호텔에 짐을 풀고 근처 식당에서 독일 생맥주를 한 모금 마셨을 때였어요. "드디어 무사히 도착했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여행이 시작됐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죠. 5,000원짜리 독일 라거 생맥주 한잔이 어쩜 그리 시원하고 달던지요!



Q. 체류하시는 동안 마을호텔에서 머무르시면서 주민분들과의 교류가 인상적이었는데요.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평소에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 게 좋은 삶일까를 자주 생각해요.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많이 조급해지기도 하고요. 도전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인데, 놓치고 있는 게 있는 건 아닐까, 다르게 살아야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과 '더 나이 들면 못해' 같은 두려움이 깔려 있고요.




그런데 바바리아 하우스를 운영하는 양경희 선생님과 해르베르트 선생님이 보여주신 생동감에 제 걱정이 무색해졌습니다.


양경희 선생님이 독일마을에 정착한 건 74세 무렵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나이에 새로운 터전을 만들고 숙소를 운영하며 여전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계셨어요. 비수기에는 독일에 머물고, 최근에는 독일인을 대상으로 한국 여행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세상과 꾸준히 연결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무척 닮고 싶은 어른의 모습이었거든요. 대화를 나누는 내내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숙소 역시 두 분을 닮아 있었습니다. 곳곳에 정성과 손길이 느껴지고 편안했어요. 깔끔쟁이 할머니, 할아부지 집에서 잔 느낌이랄까요. 숙소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였어요. 뒷산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방 안쪽까지 스미는 햇살에 깨서 발코니로 나가면 크고 작은 빨간 지붕 너머로 반짝이는 물건항이 보였을 때, 모든 감각이 정화되는 빛나는 아침이었습니다.



Q. 실제 독일마을 주민의 삶과 가까이 머무는 경험을 통해 남은 생각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파독 간호사셨던 양경희 선생님이 독일어도 모른 채 독일로 떠나 5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낼 수 있었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조금 낯부끄러운 표현이지만,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사랑이 아닐까 싶었습니다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선생님과 저는 서로에게 완전히 낯선 사람이었잖아요. 그런데 함께 걷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꽤 큰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신 거예요아마 독일에서도,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렇게 사람들에게 마음을 건네며 살아오셨겠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다시 만나고 싶어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연고 하나 없는 타국에서의 삶도, 다시 한국에서 시작한 새로운 삶도 결국 그런 마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 같아요. 계산 없이 내어주는 마음. 낯선 곳에서도 사람을 살아가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이번 독일마을 체류 프로그램 데미안의 방은 작가님에게 어떤 시간으로 남았나요?



이번 여행기를 SNS에 공유를 했는데 한 편집자님께서 이런 메시지를 보내주셨어요.


"안전하고 좋은 경험들이 귀찮님에게 더 차곡차곡 쌓이길 바라요. 아주 사사로운 일들이더라도 말이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덕담처럼 들렸어요. 오래도록 창작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꿈꾸고, 더 많이 사유해야 한다는 이야기처럼 느껴졌거든요.




독일마을에 도착한 첫 날, 독일마을 작은 골목을 혼자 걸었는데요, 해는 천천히 저물고 있었고 관광객들이 떠난 마을은 참 조용했어요. 그 아름다운 길을 걷는 동안 온전히 혼자의 시간이 시작된 것 같아서 참 좋았습니다. 그 동안 혼자 여행오는 것을 왜 그렇게 무서워했을까 싶을 만큼요막상 와보니 거창한 결심이 필요한 일은 아니더라고요.


제가 남해에 머문 시간은 고작 23일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그동안 문경에서 잔뜩 경계를 치고 살았다면, 이제는 조금 더 자주 그 경계를 넘어보려고 합니다. 혼자 더 많이 걷고, 만나고, 사유하면서 제게 안전하고 좋은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도록요. 그런 변화를 시작하게 해준 여행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일상의 경계를 넘어 찾아온 독일마을의 23일은, 귀찮 작가의 일상 속으로 다시 스며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인스타그램 @lazy.drawing에서 이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사진 및 그림 제공 : 귀찮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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